월드컵 하면 현대차 … 후원 한방에 글로벌 인지도 ‘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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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는 스위스 취리히에 문을 연 국제축구연맹(FIFA)의 풋볼 뮤지엄을 러시아 월드컵 기간 동안 모스크바로 옮겨 와 전시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 뮤지엄은 스위스에 있을 때는 하루 평균 170명이 찾았으나 월드컵 기간에는 하루 1700명 이상이 찾는 명소로 떴다. [사진 현대차]

프랑스 축구 영웅 티에리 앙리가 화면 가득 등장한다. 앙리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결승에서 상대 팀 선수와 교환한 유니폼”이라며 브라질 슈퍼스타 호나우두의 경기복을 들어 보인다. 이어 선수 다섯 명의 이름이 적힌 낡은 종이 한 장을 꺼내 보인다. 8강전 이탈리아와 경기에서 승부차기에 들어갔을 때 감독이 써서 건네준 키커의 순서가 적힌 메모지다.

앙리가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이 겪은 월드컵을 설명하는 내내 화면 오른쪽 아래에는 ‘HYUNDAI’라는 글자가 ‘H’자 형상의 현대차 로고와 함께 떠 있다. 1분 27초짜리 이 영상은 러시아 월드컵 기간 내내 전 세계에 방송된다. 앙리뿐 아니라 독일의 축구 스타 포돌스키가 뿔피리 응원 도구 ‘부부젤라’를 들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회상하는 영상, 브라질 대표팀 주장 카푸가 94, 98, 2002 월드컵의 경험을 들려주는 영상도 현대차 로고와 함께 전 세계에 방영된다.

현대차가 월드컵과 관련해 이런 영상을 제작할 수 있는 건 1999년부터 국제축구연맹(FIFA)을 공식 후원하고 있어서다. 전 세계 자동차업체 중에는 FIFA가 주관하는 대회를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는 권리를 현대차만이 갖고 있다.

모스크바에 문을 연 풋볼 뮤지엄의 외부 모습. [사진 현대차]

월드컵에는 자동차뿐 아니라 코카콜라·비자카드·맥도날드·카타르항공 같은 유명 업체들이 스폰서에 나서려고 일제히 뛰어든다. 제품 속성이 스포츠와 큰 관련이 없는데도 이렇게 나서는 이유를 마케팅 전문가들은 축구가 가진 ‘글로벌 보편성’에서 찾는다. 차우준 현대차 브랜드커뮤니케이션 1팀장은 “마케팅업계 용어로 소위 ‘한방’에 인지도를 확 끌어올리는 이벤트로 지상 최대 행사가 월드컵”이라고 설명했다.

스포츠 팬을 분석하면 크게 네 부류로 나뉜다. 축구를 예로 들면 ①무관심층 ②월드컵 때 반짝 관심층 ③평소 클럽 축구까지 관심층 ④열성 팬으로 나뉜다. 축구는 다른 종목에 비해 무관심층이 가장 적은 종목으로 꼽힌다. 차 팀장은 “보통 마케팅 측면에서는 마지막 두 개 층이 주 타깃인데 월드컵의 경우 3개 층이 모두 타깃인데다 무관심층은 가장 적으니 효과가 뛰어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코카콜라가 서울 강남에 문을 연 월드컵 체험 공간. [사진 코카콜라]

4년 만에 한 번씩 열리는 대회이지만 올림픽과 비교해도 월드컵의 마케팅 효과는 두드러진다. 올림픽은 한 달 남짓인 대회 기간 외에는 마케팅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 종목별로 선호도가 갈리는 것도 약점이다. 이에 비해 월드컵은 마케팅 효과가 4년 가까이 지속한다. 본 대회가 열리기까지 FIFA는 여자 월드컵, 유소년 월드컵, 20세 이하 월드컵 등 10여개 대회를 연다. 지역과 계층을 달리해 소비자 공략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한 마케팅 분석기관은 현대차가 2002년 한·일 월드컵 공식 후원사로 활동하며 6조 원 이상의 광고 효과를 거뒀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선 경기장 광고판 홍보로만 8조6000억원의 마케팅 효과를 본 것으로 알려진다. 월드컵 결승전은 전 세계 약 8억 명이 시청하는 이벤트이다 보니 이때 광고 노출효과만 1조 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현대차가 FIFA 후원에 나섰던 99년만 해도 축구 마케팅에 대한 효과를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현재 현대차가 FIFA에 얼마를 후원하는지는 양 측간 계약 내용에 따라 공개하지 않는다. 그러나 99년 당시에는 4000만~5000만 달러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현대차 내에서는 이 큰돈을 축구 마케팅에 써야 하느냐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현대차 임성봉 브랜드커뮤니케이션 2팀장은 “월드컵 대회가 끝날 때마다 현대차 인지도 조사를 해보면 대회 전후 큰 차이가 있었다”며 “상세한 수치를 공개할 수는 없지만,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예로 들면 대회가 끝난 후 독일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가 두 배나 오르는 효과를 거뒀다”고 설명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축구 마케팅에 나선 기업들은 자사 제품의 속성과 축구를 연결하기 위해 온갖 아이디어를 짜낸다. 코카콜라나 맥도날드처럼 축구 경기를 관람하면서 먹고 마실 수 있는 제품은 비교적 아이디어 발굴이 어렵지 않다. 비자카드의 경우 ‘전 세계인이 즐기는 축구처럼, 비자 카드도 세계 곳곳에 편히 쓸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는다. 중국의 부동산 기업 완다그룹은 규모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기업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거액을 내고 이번 러시아 월드컵을 포함해 2030년까지 4개의 대회에 스폰서로 동참했다.

축구 마케팅은 월드컵 외에 클럽팀에서도 효과가 있다. 현대차는 최근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클럽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첼시를 공식 후원한다고 발표했다. 앞서 프랑스 1부 리그의 올림피크 리옹도 후원해오고 있다. 차 팀장은 “현대차가 최고급 브랜드를 지향하면서 후원 팀도 각 리그를 대표하는 명문 팀 중에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클럽 축구 후원은 월드컵과 또 다른 효과가 있다. 각 팀이 지역을 기반으로 팬들의 지지를 얻고 있기 때문에 지역 밀착형 마케팅이 가능하다. 거물급 신입이 등장했을 때 광고를 찍을 수 있는 권리도 누릴 수 있다. 후원사는 가슴·소매처럼 로고 부착 위치에 따라 후원 금액을 달리 낸다. 팀 선택에도 여러 제약이 따른다. 파란색 로고를 쓰는 현대차는 리버풀의 가슴 로고 대신 노출도가 다소 낮은 첼시의 소매 로고를 선택했다. 리버풀은 빨간색, 첼시는 현대차 로고와 유사한 파란색 유니폼을 입는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출처: 미주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