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 초만 해도 러시아는 왕국도 아닌 영주국 정도의 나라였다. 당시 이 지역을 지배하던 사람들은 징기스칸의 후예인 타타르인들이었다. 타타르인들이 아시아와 유럽의 북방을 점령하고 수도로 세운 곳이 카잔이다. 바로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팀이 세계 랭킹 1위의 독일 팀에게 2대0으로 승리한 곳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도시다.
카잔은 15세기는 카잔 칸국의 수도로 최고의 번성기를 누렸다. 당시에는 러시아는 단지 카잔의 조공국으로 모스크바는 카잔제국의 노예를 공급하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폭군 이반’으로 불리는 러시아의 이반 4세에게 1552년 카잔성이 점령됨으로써 지역의 패권을 모스크바에게 넘겨주고 1708년 러시아 제국의 일부가 된다.
카잔은 타타르인의 전통에 따라 전통적으로 모슬림의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주로 러시아 정교회를 믿는 서부지역의 러시아 와는 인종적으로 종교적으로 심지어는 의상이나 음식에서도 많이 다르다. 주요 관광지도 카데드랄이 아니라 모스크로, 건물 자체도 더 크고 화려하다. 가장 유명한 곳은 카잔크렘린 (‘크렘린’은 ‘성’을 의미한다)으로 산 정상에서 도시를 내려다 보고 있다. 공산주의 소비에트 시절을 거쳐 현재는 자치공화국의 수도로 모스크바로 부터 800킬로미터 동쪽에 위치해 있다. 모스크바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마지막 구간 밤 기차를 타면 카잔까지 13시간이 걸린다. 카잔은 인구 120만명의 러시아 제 6의 도시다.
이반 4세가 카잔을 점령한 후, 제국을 건설하고 스스로에게 ‘짜르’ 칭호를 붙인다. 그리고 카잔점령을 축하하기 위해 건설한 것이 유명한 ‘카잔교회’다. 카잔 교회가 있는 도시가 핀란드만의 유럽 쪽에 붙은 상트페테르부르크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영어로는 세인트 피터스버그에 해당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14세기에서 18세기 초까지 모스크바와 함께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레바강을 통해 핀만드만으로 나가는 수상교통의 델타지대의 형성된 자연섬과 운하로 인해 생긴 수많은 섬 위에 세워진 도시이다. “북유럽의 베네치아”로 불릴 만큼 인공적으로 형성된 도시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8세기 러시아를 강대국으로 발전시킨 ‘표트르 (피터) 대제’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건설되어 런던과 파리에 필적하는 유럽식 대도시로 발전하였다. 이 도시의 이름이 바로 그의 이름에서 나왔다. 러시아 제국 짜르시대의 전성기 모습을 보여준다. 건축광이었던 그는 수많은 건물을 지었는데, 특히 여름궁전의 수백개의 분수를 하나 하나 직접 디자인하고 건축한 것으로 유명한 일이다. 이후 예카테리나 여제 시대를 거치며 유럽의 예술품들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막강한 짜르의 권력을 바탕으로 유럽의 변방에서 주요도시로 부상했다. 역사적으로는 나폴레옹 몰락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상트페테르부르크 전투의 현장이다.
러시아의 공산혁명 이후, 주도권을 모스크바에 내 주고 레닌 사후 그 이름도 강제로 ‘레닌그라도’로 바뀌었지만, 소련이 무너지자 마자 그 이름을 다시 옛 황제시대의 이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바꾸었다.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에루미타주 박물관은 과거에 황제의 겨울 궁전이었다. 피카소의 작품을 비롯한 인상파 화가의 작품에서 유럽의 루브르와 필적할만큼의 소장품을 자랑한다. 박물관 소장품은 모스크바보다 더 화려하고 다양하다. 이 도시의 유적과 박물관들을 볼아보는 것은 러시아 관광의 필수코스로 꼽힌다. 모스크바에서 서쪽으로 700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며 러시아 제2의 도시로 인구는 약 450만명이다. 모스크바에서는 고속기차로 약 4시간 반이 걸린다.
모스크바는 그 이름이 도시가 끼고 있는 강인 모스크바강에서 왔다. 12세기 이후 모스크바 공국의 수도 역할을 했고, 여러번 러시아의 수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위치가 유럽에 치우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동부의 카잔 등의 중심에 위치해 있고, 볼가 강과 오카 강 사이에 있어 꾸준한 도시 확장에 유리한 위치였다. 러시아 공산 혁명이 성공한 직후인 1918년 소련의 탄생과 함께 소련의 수도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부터 모스크바로 옮겨왔다. 전세계 공산당의 본부로 구 공산권에서는 최고의 유학지이기도 했다. 2차 대전에서 히틀러에게 최대의 패배를 안겨준 모스크바 철수작전이 벌어진 곳이다.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에도 러시아의 수도로써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모스크바 시가의 중심에는 모스크바강 연안에 크렘린이 있고 또한 그 주변에는 붉은 광장과 레닌 묘, 바실리 사원 등이 있다. 사방으로 방사상 도로가 뻗어 있고,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극장 등이 많다.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유럽적인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반하여, 모스크바는 더 전통적인 러시아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공산주의 시절 지어진 대형건축물들도 관광객들에게는 많으 볼거리를 선사해 준다. 고르키 공원을 비롯한 공원이 잘 갖추어져 있다. 모스크바는 1,100만명이 사는 러시아 최대의 도시로 유럽 전체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다.
러시아 사람들의 표정은 무뚝뚝하지마, 속은 따뜻하다. 특히 영어를 하면 더 친절해진다. 러시아인들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나이 든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를 못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과외를 해 가면서 영어를 배우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의 식품과 주거의 물가는 미국의 대도시들에 비하면 반값 정도로 싼 편이다. 특히 요즈음 러시아 경기후퇴로 달러에 대한 환률이 좋아서 (1달러는 약 6.2 루브르) 더 싸게 느껴진다. 모스크바 3일 대중교통 무제한권은 약 8달러이고, 고급 식당에서의 저녁도 일인당 30~50달러 정도면 충분하다. 반면에 같은 이유로 수입품의 가격은 무척 비싸다. 호텔 요금은 모스크바는 객실 부족으로 비싼 편이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나 다른 도시들은 서유럽의 도시들과 비슷하다.
러시아를 관광하려면 한국여권소지자는 무비자이지만, 미국여권소지자는 비자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미국 시민권자가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까다롭고 경비도 많이 든다. 반면에 미국관광객이 많지 않아서인지 미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 요금은 저렴한 편이다. 미국에서 한국에 갈때, 싼 요금을 이용하여 몇일 동안의 모스크바 경유를 선택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다. 혹은 유럽이나 핀란드에서 출발하는 크루즈를 타면 72시간 동안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체류는 비자가 필요하지 않다.
세계가 한지붕 아래라는 21세기에도 미국시민들에게는 아직도 가 보기 힘든 철의 장막으로 남아있는 러시아의 카잔과 상트페테르부르크, 그리고 모스크바는 마치 한국의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과 6.25 임시수도였던 부산 그리고 현재의 수도인 서울과 같은 뚜렷한 개성을 지닌 모습들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3개의 도시가 아름다운 지하철 역을 가지고 있고 모두 동일한 모스크바 시간대를 사용하지만, 모스크바에서는 ‘메트로’로 불리는 지하철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서브웨이’라고 불린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살면서 한번쯤 가보아야 하는 버켓 리스트 가운데 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