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해 남동쪽의 세 나라인 에스토니아(Estonia), 라트비아(Latvia), 리투아니아(Lithuania)는 우리에게 좀 낯설고 생소하게 다가오는 여행지다.
그러나 서쪽으로 폴란드, 동쪽으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발틱 3국은 여행 고수들이라면 일찌감치 점찍어 두고 버킷리스트에 올려둔 유럽의 숨은 보석이다. 굴곡 많은 외침의 역사 속에서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수많은 침략과 지배를 당했던 세 나라는 1989년 8월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퍼포먼스를 벌였다.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라트비아 수도 리가를 거쳐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브까지 200만명이 넘는 국민들이 손에 손을 맞잡고 평화와 독립의 노래를 부른 것. 이른바 ‘발트의 길’을 통해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1991년 평화와 독립을 얻어냈다.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의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붉은 고깔 모양 지붕을 얹은 쌍둥이 탑, 이름하여 비루 게이트를 지나면 중세 시대를 연상시키는 건축물들이 쉼 없이 이어진다. 구시가지는 저지대와 ‘톰페아’라 불리는 고지대로 나뉘는데, 톰페아에서 내려다보면 빙 두른 성벽이 한눈에 펼쳐진다. 탈린이 가장 강성했던 15~16세기에는 이 성벽을 따라 46개의 성탑이 있었고, 이는 북유럽 최고의 철옹성 중 하나였다. 현재는 그중 26개의 성탑만이 남아 있지만 그래도 다른 도시와 구별되는 탈린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2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휴양도시 파르누(Parnu)에는 에스토니아 대통령의 여름 별장이 위치하며 축제가 끊이지 않아 여름이면 수도가 이곳으로 옮겨온다는 말까지 생겼다.
라트비아의 리가 역시 구시가지 전역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13세기 이후 한자동맹을 주도한 맹주답게 중세 건축물들이 훌륭하게 보존돼 있다. 표드르 대제 동상 자리에 설치한 자유의 여신상, 스웨덴 군인들이 화약 저장 목적으로 쌓은 화약탑, 고딕.더치 매너리즘.바로크 양식 등 각기 다른 스타일로 15~17세기에 걸쳐 지어진 삼형제 건물, 중세 시대 길드가 쓰던 화려한 건물인 검은 머리 전당 등이 유명하다.
리투아니아는 한때 발트해에서 흑해까지 유럽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졌던 국가였다. 그중에서도 빌뉴스는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리투아니아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현재는 리투아니아의 수도이자 중세와 현대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분위기가 매력적인 여행지로서 전 세계 여행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인근에는 동화책에서나 나옴직한 아름다운 고성도 있다. 갈베 호수 한가운데 떠있는 트라카이 성은 수 세기에 걸쳐 전쟁에 걸쳐 파괴되었다가 1955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성은 그리 크지도, 높지도 않지만 성 자체가 지닌 기품과 자태가 근사하다. 중세를 배경으로 풀어낸 여러 영화의 단골 촬영지여서인지 배를 타고 성 주변 호수를 누비다 보면 모두가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박평식 / US아주투어 대표·동아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