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급호텔은 레저 문화를 선도한다. 특급호텔 한 곳이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하면 국내 레저 트렌드에는 한바탕 바람이 일어난다. 이를테면 2010년 제주신라호텔이 바비큐 텐트를 치자, 서울의 특급호텔도 고기 굽는 연기로 자욱했다. 최근 들어 제주도 특급호텔 사이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읽힌다. 어덜트 풀(Adult Pool), 즉 성인 수영장(성인 풀) 프로모션이다. 불과 5년 사이 뚜렷해진 트렌드인데, 리조트 성격이 강한 제주 특급호텔의 입장을 생각하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가족 고객이 커플 고객보다 매출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성인 고객에게 투자를 할까. 그리고 어떻게 성인 고객을 불러 모을까. 성인 풀에 공을 들이는 제주 특급호텔 세 곳의 속사정과 비책을 들여다봤다.
조용하게 여유롭게 – 제주신라호텔
제주신라호텔은 개혁의 선두주자였다. 바비큐 캠핑은 물론이고, 야외 온수 풀도 처음 도입했다. 호텔 직원이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GAO 서비스도 제주신라호텔에서 비롯됐다. 방향이 뚜렷했다. 가족 고객을 더 많이, 그리고 더 오랜 시간 호텔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 지금은 제주 특급호텔 대부분이 제주신라호텔의 서비스를 따라 한다.
제주신라호텔은 2016년 성인 풀을 도입했다. 성인 풀은 바로 옆의 켄싱턴 제주 호텔보다 늦었다. 대신 차별 지점이 뚜렷하다.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사양한다. 조용하고 여유롭게 휴가를 즐기려는 어른을 겨냥한다. 오상훈 총지배인도 “단순한 성인 수영장이 아니라 어른만을 위한 힐링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성인 풀은 패밀리 풀 위에 있다. 계단을 올라야 하며, 계단 아래에서 19세 이하는 입장을 막는다. 풀 둘레에 카바나가 놓여 있고, 카바나 뒤로 야자나무가 서 있다. 아이들이 물놀이 하는 패밀리 풀이 바로 아래에 있지만, 동떨어진 공간처럼 느껴진다. 트롤리에 꽂힌 책에서 성인 풀이 지향하는 바가 읽힌다. 선 베드에 누워 책을 읽다 까무룩 낮잠에 드는 여유 말이다. 달빛 아래에서 유유히 수영을 즐겨도 좋겠다. 성인 풀은 자정까지 운영한다.
놀고 싶으면 놀면 된다. 성인 풀 아래에서 밤마다 라이브 뮤직 콘서트가 진행된다. 7월 28일부터 한 달간 플라멩코 공연도 열릴 예정이다. 성인 풀 옆의 풀사이드 바 2층도 어른을 위한 공간이다. 짬뽕이 유명하다.
광란의 푸른 밤 – 켄싱턴 제주 호텔
제주 특급호텔 성인 풀의 원조는 켄싱턴 제주 호텔이다. 2014년 켄싱턴 제주 호텔은 개장과 함께 19세 이상만 이용할 수 있는 풀을 선보였다. 지상 4층 건물 옥상에 있어서 ‘루프 탑’이고, 모서리를 경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도록 처리해 ‘인피니티 풀’이다. 이 두 특징을 이어 붙여 ‘스카이피니티 풀’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스카이피니티 풀은 개장과 함께 명물로 떠올랐다. 해가 지면 자정까지 옥상 수영장에서 파티가 열렸기 때문이다. 호텔은 아예 성인 풀 옆의 바를 클럽처럼 단장했다. DJ가 상주하며 EDM 음악을 틀었고, 힙합 공연이 수시로 열렸다. 대형 LED 볼과 레이저 조명이 제주도 푸른 밤을 어지러이 밝혔다. 호텔은 이 파티를 ‘스파티(sparty)’라고 불렀다.
파티가 시작하면 수영장은 클럽으로 변신했다. 화려한 수영복 차림의 젊은이들이 연신 몸을 흔들었다. 물에 들어가도 수영을 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아니 사람이 너무 많아서 수영을 하기도 힘들었다. 다른 시설과 차단된 공간에 있어 늦은 시간까지 소란을 피워도 별 탈이 없었다. 제주의 새로운 레저 문화가 이렇게 태어났다.
켄싱턴 제주 호텔의 스파티는 SNS에서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젊은 층 사이에서 ‘제주에서 가장 힙(hip)한 곳’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신생 호텔로서는 이 만한 홍보 효과가 없었다. 이윤규 총지배인은 “스파티의 인기에 힘입어 가족 단위 패키지상품도 잘 나간다”고 귀띔했다. 올 여름에도 스파티는 계속된다.
제주도민의 핫 플레이스 – 메종글래드 호텔
메종글래드 호텔은 제주도의 터줏대감 같은 특급호텔이다. 제주의 특1급 호텔 대부분이 중문관광단지에 모여 있는 반면에 메종글래드 호텔은 1978년 개장한 이래 제주 시내를 꿋꿋이 지키고 있다. 제주도가 주최하는 수많은 행사와 연회가 이 호텔에서 열렸다. 지금은 대기업으로 주인이 바뀌었지만, 애초에는 호텔 주인이 제주도 향토 기업이었다. 제주의 특급호텔이 관광객을 겨냥한 시설이라면, 메종글래드 호텔은 제주도민과 더 가까운 호텔이다. 제주에서 메종글래드 호텔이 갖는 위상은 그만큼 각별하다.
메종글래드 호텔에도 성인 풀이 있다. 패밀리 풀과 별도로, 길이 20m 폭 8m 수심 1.2m의 성인 온수 풀을 운영한다. 솔 향기 그윽한 정원 속에 어른만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다. 여느 특급호텔의 성인 풀보다 조금 이른 오후 11시에 문을 닫는다.
흥미로운 건 비투숙객도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급호텔 수영장은 투숙객만을 위한 시설이게 마련인데, 메종글래드 호텔은 수영장을 완전히 개방한다. 대신 입장료를 받는다. 어른 2만5000원. 강석훈 총지배인은 “메종글래드 호텔이어서 가능한 서비스”라고 소개했다. 메종글래드 호텔의 성인 풀은 제주도민의 대표적인 바캉스 명소인 셈이다.
7월에는 기존의 야외 수영장 캐주얼 펍 ‘비스트로 자왈’ 옆에 새로운 풀사이드 바가 문을 연다. 서울 청담동의 퓨전재즈 라이브 바 ‘겟올라잇’이 들어온다.
제주=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