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관광 시장 전체를 좌우하는 먼 나라 섬이 있다. 미국령 괌이다. 한국과 관광 시장을 양분했던 일본이 코로나 여파로 해외여행을 멈춘 사이, 괌은 섬 전체가 한국인 세상이 됐다. 지난해 괌을 찾은 전 세계 여행자 32만 명 중에서 19만 명이 한국인이었다.
한국인 천지였던 괌에서 한동안 한국인이 사라졌었다. 지난 5월 섬 전체를 강타한 태풍 ‘마와르’ 때문이었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지 두어 달이 지난 지금, 공항·호텔·쇼핑몰·식당 등 시설 대부분이 운영을 재개했다. 정상 회복을 선언했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달 괌을 방문했다. 두어 달 공백에도 한국인의 괌 사랑은 여전했다. 올해도 6월까지 18만 명 넘는 한국인이 괌을 방문했다고 한다. 점유율이 61.2%에 이른다.
코로나도 가고, 태풍도 가고
지난달 19일 괌행 비행기에 올랐다. 소셜미디어와 언론보도를 통해 “태풍 잔해가 바다에 둥둥 떠 있다” “호텔·식당 곳곳이 문을 닫았다” 같은 소식을 접한 게 엊그제 같은데, 현장 모습은 전혀 달랐다.
두짓타니, 더 츠바키 타워, 롯데호텔 등 주요 호텔·리조트가 정상 영업 중이었고, 야외 수영장과 레스토랑 모두 한국인으로 북적였다. 니코 호텔 관계자는 “태풍 직후 한국인 예약이 뚝 끊겼는데 현재는 전체 투숙객 중 한국인이 30%가 넘는다”고 말했다. 한 달 넘게 중단됐던 서커스 공연 (수퍼 아메리칸 서커스)도 지난달 재개했다.
쪽빛 바다에서 패들보드·카약·스노클링을 즐기는 관광객의 모습도 그대로였다. 현지에서 만난 칼 T.C. 구티에레즈(82) 괌 정부관광청장은 “피해는 컸지만, 인명사고는 한 건도 없었다”며 “한국인의 도움으로 괌 관광시장이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6월 28~30일에는 괌 정부관광청과 진에어, PIC 괌 호텔, 괌 한인회 등이 투몬 지역 해변에서 태풍 피해 복구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모든 상처가 아문 건 아니다. 시내 외곽 도로에 쓰러진 나무가 남아있었다. 기념사진 명소로 통하는 스페인 광장에도 나무가 뿌리째 뽑힌 흔적이 있었다. 관광 명소 ‘사랑의 절벽’도 타격이 컸다. 7.6m 높이의 명물 ‘연인 동상’과 과일 음료를 팔던 노점이 태풍에 쓰러져 사라졌다. 그래도 전 세계 연인이 남기고 간 ‘사랑의 자물쇠’만은 절벽 난간에 굳건히 매달려 있었다. 이날도 여러 한국인 연인이 자물쇠를 걸며 추억을 남기고 돌아가는 걸 봤다.
‘괌’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쇼핑이었지만, 요즘은 원·달러 환율이 급등해 면세·아울렛 쇼핑의 이득이 많아 사라졌다. 이번에는 쇼핑몰이 몰려 있는 투몬 해변을 벗어나, 섬 곳곳을 돌며 괌의 숨은 매력을 담아보기로 했다. 명품 가방보다 인생 사진을 택한 셈이다.
괌은 작다. 우리나라 거제도와 비슷한 크기로, 자동차로 2~3시간이면 섬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신속하게 이동하며 다양한 기념사진을 남기는 여행을 선호한다면 한인 택시나 현지 여행사를 통한 반나절 남부 투어가 적당하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흔적이 서린 ‘솔레다드 요새’, 괌 최남단 ‘메리조 마을’ 등을 두루 거치며 기념사진을 담을 수 있다. 4인 기준 200달러(약 25만원, 4시간)가 보통이다.
100달러로 즐기는 렌터카 탐방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소형차의 경우 100달러(약 12만원, 보험 포함) 정도면 24시간 대여가 가능하다. 렌터카는 섬 구석구석을 자유롭게 돌아보고 여유 있게 시간을 쓸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이를테면 섬 남부 이나라한(Inarajan)은 반나절 투어로 스쳐 지나기엔 아까운 지역이다. 마을 끄트머리에 과거 화산 폭발로 형성된 웅덩이가 여럿 있는데, 현지에서 가장 인기 있는 물놀이 시설로 통했다. 화산 폭발로 형성된 갯바위가 해안선을 따라 장벽을 치고 있어 물살이 잔잔했다. 스노클링을 즐기기에 안성맞춤한 천연 수영장이었다. 전망대가 설치된 암초 위에 올라서니 웅덩이 너머로 바다가 한눈에 펼쳐졌다.
괌을 여행한 한국인 중에서 괌 중부 지역의 ‘사랑의 절벽’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테다. 반면에 절벽 아래 탕기슨(Tanguisson) 해변은 아는 사람이 드물다. 25년 경력의 현지 택시 기사는 “백사장이 작고 편의시설도 없지만, 한적한 매력이 큰 해변”이라고 소개했다. 탕기슨 해변의 명물은 바다 위에 우뚝 솟은 버섯 모양의 갯바위 두 개다. 썰물 시간 북쪽 해안을 따라 돌아가면 만날 수 있다. 탕기슨 해변과 이나라한 천연 수영장 모두 한국인을 찾아볼 수 없는 비밀의 명당이다.
☞여행정보= 코로나 관련 규제가 사라져 PCR 검사나 백신 증명서 없이도 괌을 여행할 수 있다. 8월의 괌은 한국의 한여름 날씨와 비슷하다. 햇볕이 강해 선글라스와 모자가 필수다. 맑은 날에도 소나기가 잦은 편이라 우비도 챙기는 것이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