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루덴스. 인간은 놀이하는 동물이다. 인간은 일만 하고 살 수 없다. 놀아야 한다. 도시도 그렇다. 살기 좋고 일자리도 많아야 하겠지만 재미있어야 한다. 인간이 얼마나 놀기를 좋아하는 동물인지 라스베이거스를 보면 알 수 있다. 미국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는 인간의 놀 궁리를 최첨단으로 구현한 도시다. 10월 말 라스베이거스를 다녀왔다. 3회에 걸쳐 싹 달라진 도시의 면면을 소개한다.
약 3조원을 들여 만든 스피어는 규모와 시설이 압도적이다. 우선 내부. 좌석은 약 1만7800개인데 화면 크기가 1만5000㎡에 달한다. 축구장 두 배 크기다. 곡면으로 휘어서 천장까지 닿은 화면에 18K 영상이 펼쳐져 몰입감이 상당하다. 스피커는 16만7000개에 달한다. 영화감독 대런 애러노프스키가 연출한 50분짜리 영상물 ‘지구에서 온 엽서’를 봤는데 해저에서 가오리가 헤엄치는 모습, 코끼리가 초원을 걷는 장면이 생생했다. 영상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기분이었다. 스피어는 기라성 같은 스타들의 공연과 스포츠 경기도 연다. 아일랜드 록그룹 U2가 테이프를 끊었다. 9월 말 시작한 공연을 내년 2월까지 35회 진행한다. 환갑이 훌쩍 넘은 ‘형님들’의 체력이 걱정될 정도다. 가장 비싼 U2 공연 티켓은 1000달러(135만원)가 넘는다. 내부 관람 투어는 49달러부터다.
비싼 입장료를 안 내고도 스피어를 즐길 수 있다. 2억6800만 개 픽셀로 뒤덮인 건물 외벽에 종일 화려한 영상이 재생된다. 스피어가 잘 보이는 장소마다 인증샷 명소로 SNS에서 화제가 됐고, 스피어와 가까운 베네시안, 윈, 앙코르호텔도 덩달아 인기를 누리고 있다. 중심가인 스트립에서 다소 떨어진 엠버시 스위트 호텔은 의외의 명당이었다. 객실 테라스에서 고층 호텔과 스피어가 줄지어 선 모습이 한눈에 담겼다.
미국 엔터테인먼트 기업 MSG는 라스베이거스 외에도 대륙마다 스피어를 하나씩 만들 계획이다. 유럽에서는 영국 런던, 중동은 두바이와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논의 중이고, 한국은 경기도 하남시가 MSG와 협약을 맺었다. 아직 건립 확정은 아니다. 2025년 착공을 목표로 한다는데 난제가 많다. 엄청난 빛 공해를 어떻게 해결할지 궁금하다. 런던도 교통난, 주택난 탓에 반대 여론이 드세다. 라스베이거스야 오락의 도시, 밤의 도시이니 큰 문제가 없지만 말이다.
“라스베이거스까지 갔다면 쇼 하나는 봐야지.”
한국인 사이에서 통하는 말인데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뉴욕 브로드웨이나 런던 웨스트엔드를 가면, 뮤지컬을 보듯이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쇼를 꼭 봐야 한다. 노래와 춤, 화려한 무대장치에 더해 서커스 수준의 고난도 퍼포먼스가 어우러진 쇼가 곳곳에서 펼쳐진다. 오쇼와 카쇼가 쌍두마차로 꼽힌다. 여기에 윈 호텔에서 열리는 ‘르 레브’까지 가장 인기가 많아 3대 쇼로 꼽혔으나 르 레브는 2020년 막을 내렸다. 대신 지난해 10월 완전히 새로운 콘셉트의 쇼 ‘어웨이크닝’이 상연을 시작했다.
어웨이크닝은 여주인공 IO가 빛과 어둠을 재결합하는 신화적인 모험 이야기다. 500만 리터 이상의 물을 쓰는 오쇼에 비하면 시각을 자극하는 재미는 덜하지만 배우들의 춤과 눈부신 무대장치가 인상적이다. 영화 ‘라라랜드’ 안무 감독 등 기라성 같은 공연계 실력자들이 참여했다. 좌석 머리맡에 스테레오 스피커가 설치돼 있어 음악과 대사도 또렷하게 들린다.
최승표(spcho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