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애미는 미국인이 사랑하는 휴양 도시다. 우리가 제주도 푸른 바다를 꿈꾸는 것처럼 미국인은 마이애미의 바다를 꿈꾼다. 마이애미는 햇빛 쏟아지는 여름이 사계절 이어지고, 카리브해와 대서양을 향한 거대한 해변이 펼쳐져 있다. 거리상의 제한 때문에 발 도장 찍고 가는 한국인은 드물다지만, 일생일대의 즐길 거리로만 따지면 뉴욕·LA 같은 도시에 뒤지지 않는다. 현존 최대 규모의 크루즈, 미국에서 인스타그램에 가장 많이 태그되는 핫 플레이스, 슈퍼 리치들의 보금자리로 통하는 ‘스타섬’ 모두 마이애미에 있다.
움직이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약 700만명. 지난해 마이애미 항구를 통해 크루즈 여행에 나선 여행자 숫자다. 마이애미는 전 세계 크루즈 산업의 메카로 통한다. 지난달 20일에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크루즈 ‘아이콘 오브 더 시즈(Icon of the seas, 이하 ‘아이콘호’)가 마이애미에서 첫 출항을 알렸다. ‘타이태닉의 5배 규모’ ‘건조 비용만 20억 달러’라며 전 세계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 배가 마이애미를 떠나 카리브해로 나아갔다. 국내 언론 가운데 중앙일보가 유일하게 아이콘호의 첫 항해를 함께했다.
지난달 20일 오전 아이콘호에 올랐다. 엄청난 크기에 대해선 온종일 떠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단 미국 현지에서 가장 즐겨 쓰는 비유는 ‘움직이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었다. 빌딩을 누인 것(381m)과 아이콘호의 길이(365m)가 비슷해서다. 20층으로 이뤄진 선실은 2805개의 객실을 갖춰 고층 아파트와 다를 바 없었고, 22개의 엘리베이터가 줄기차게 탑승객을 실어 날랐다. 대극장과 야외 스포츠 코트를 비롯해 스파·카지노·아이스링크·암벽장도 갖췄다. 바다로 뻗은 인피니티 풀을 포함한 7개의 수영장, 갑판을 따라 조성한 669m 길이의 조깅 트랙도 있었다. 식당은 카페·바까지 합치면 40개에 달했다. 링켄 디소우자 식음 총괄 부사장은 “5년간 조사를 거쳐 수십 개 레스토랑을 꾸렸고, 현재 셰프 425명이 매끼 다채로운 세계 음식을 준비한다”고 말했다.
아이콘호는 크게 8개의 테마 공간으로 조성됐다. 이를테면 8층 ‘센트럴파크’는 선내에서 가장 우아한 장소다. 2만여 종의 식물이 자라는 선상 공원으로, 숲 사이에 명품 쇼핑관과 고급 레스토랑이 고고한 자태로 들어앉아 있다. 지붕이 없는 16층의 ‘스릴 아일랜드’는 6개의 슬라이드와 서핑 시설을 갖춘 워터파크다. 기구 수는 많지 않지만, 이름처럼 스릴 하나는 확실하다. 원형 튜브를 타고 급커브를 도는 ‘스톰 서지’는 크루즈 넘어 바다로 떨어질 것 같은 공포 덕분에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눈 뜨니 바하마의 낭만 섬
크루즈 선실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총 28개 타입으로 선실이 나뉘는데, 바다 전망 발코니를 낀 선실의 경우 1인 2000~3000달러(7박8일 기준)가량이 든다. 비싸긴 하지만, 영 터무니없는 가격도 아니다. 선내에서 특별히 지갑을 열 일이 없어서다. 일단 공연과 놀이시설 대부분이 공짜다. 40개에 이르는 레스토랑·카페 가운데 14개가 무료로 운영된다. 그중에는 뷔페도 있고, 칵테일바도 있고, 24시간 카페도 있다. ‘메인 다이닝 룸’에서는 3코스의 저녁을 추가 비용 없이 즐길 수 있다. 무료 룸서비스도 해준다.
4일간의 여정이었지만 종종 배 위에 있다는 사실을 잊곤 했다. 크루즈는 낮 동안 카리브해 어딘가에 닻을 내리고 머물렀다가, 해가 지면 항해를 이어나갔다. 선체가 거대해서인지 진동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항해 3일차. 아침이 밝아오자 어느덧 크루즈는 바하마의 외딴 섬 코코케이(Coco Cay)에 닿아 있었다. 크루즈 탑승객만을 위한 전용 휴양지여서 맘 놓고 여유를 부렸다. 에메랄드빛 바다에 몸을 담그고, 비치 클럽에서 칵테일을 음미하며 카리브해의 낭만을 즐겼다.
북미와 유럽에서는 크루즈 여행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단다. 기존에는 5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 주도하는 시장이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끝난 후 고객층이 다양해지고 있다. 로얄캐리비안크루즈(아이콘호를 비롯해 28개 크루즈 운항)의 마이클 베일리 CEO는 “소셜미디어를 즐기고 파티를 사랑하는 20대 고객이 점차 늘고 있다”며 “젊은 층이 크루즈 산업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1등 핫플레이스
마이애미 여행은 적어도 열흘은 필요하다. 크루즈가 목적이더라도 사흘 정도는 여유를 두고 여행 일정을 잡아야 후회가 없다. 다운타운과 해변에도 볼거리가 넘쳐서다.
마이애미 앞바다에는 크루즈 말고도 온갖 종류의 유람선이 떠다닌다. 그중 인기 상품으로 통하는 ‘밀리어네어 크루즈’에 올랐다. 마이애미 비스케인만 안쪽에는 ‘스타섬’ ‘히비스커스섬’ 같은 인공 섬이 여럿 있는데 이곳에 베컴 부부, 윌 스미스,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청룽 등 전 세계 유명인사의 호화 저택이 몰려 있다. 스타섬의 주택은 평균 4020만 달러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흰색 돔을 올린 게 리키 마틴의 저택입니다” “제니퍼 로페즈와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집도 보이네요. 갈라선 지 몇 년이 됐는데도 집을 처분 안 했어요.”
안내원이 손짓할 때마다 관광객의 탄성이 이어졌다. 선상에서 슈퍼스타의 저택을 엿보고 다니는 관광 상품이라니. 동행한 가이드는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어서 배를 멈추는 행위만 안 하면 된다”고 귀띔했다.
마이애미는 교통 시스템이 잘 돼 있다. 시내 중심가를 순환하는 경전철 ‘메트로 무버’, 13개 노선을 오가는 ‘마이애미 트롤리’ 같은 무료 대중교통도 있다. 관광 명소만 빠르게 훑고 다니고 싶다면 2층짜리 오픈 탑 버스가 제격이다. 일일 패스를 들고 원하는 정류장에서 마음껏 타고 내리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노스웨스트 2번가의 ‘윈우드’는 길거리 예술의 성지로 통한다. 동네 전체가 그라피티를 위한 캔버스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화려한 벽화 아래에서 개성 있는 사진을 남기고 싶다면 반드시 하차해야 할 장소다.
윈우드에서 차로 10분 거리에는 마이애미에서 가장 활기 넘치는 동네 ‘리틀 하바나’가 있다. 쿠바에서 넘어온 이민자가 모인 동네로 어느 가게에 들어가든 남미의 음식과 음악, 댄스가 함께 한다.
장장 14㎞에 이르는 마이애미비치 남쪽에는 명성 자자한 핫 플레이스 ‘오션 드라이브’가 있다. 장대 같은 야자수와 쭉 뻗은 도로, 화려한 색감의 건축이 모인 이곳은 미국에서 소셜미디어에 가장 많은 사진이 공유되는 명소다. 미국 여행 정보 업체 ‘원더루’에 따르면 오션 드라이브는 인스타그램에 105만 건 이상의 해시태그가 붙어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로 뽑혔다.
☞여행정보=한국에서 마이애미로 가는 직항은 없다. 애틀랜타·댈러스 등에서 갈아타면 17~19시간이 걸린다. 크루즈를 타려면 하루 전 도착하거나, 최소 출항 4~5시간 전 도착하는 항공편을 잡는 것이 안전하다. 미국은 높은 팁 문화로 악명이 높다. 요즘 마이애미의 식당이나 카페에서는 최소 18~20% 팁을 지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티투어 버스 일일 탑승료 54달러, 밀리어네어 크루즈 탑승료 30달러. 마이애미 여행은 11월에서 이듬해 4월까지가 좋다. 이맘때는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기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백종현(baek.jong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