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슬프거나 안타까운 일을 희화할 때 ‘안습’이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풀어보면 안구에 습기가 찬다는 것인데, 눈물을 펑펑 흘리기 전에 뭔가 뿌옇게 눈 앞을 가리는 상황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자동차에도 ‘안습’이 있다. 바로 헤드램프 내부에 발생하는 습기다.
밀폐된 자동차 헤드램프 안에 어떻게 습기가 찰 수 있을까? 혹시 망가진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남가주 오렌지카운티에 거주하는 제인(가명) 씨는 최근 구매한 자동차 헤드램프에 습기 같은 것이 보여 닦아 냈지만, 외부가 아닌 내부에 습기가 찬 것을 발견하고는 차량을 구매한 딜러숍을 찾아갔다. 그러나 정비사의 대답은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 실제 딜러숍까지 가는 동안에 습기가 없어지기도 했다.
도대체 이 같은 현상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자동차 정비 전문가들은 요즘처럼 일교차가 큰 시즌인 경우 특히 늦은 밤 또는 새벽 시간에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시동 후 헤드램프가 작동하면서 내부 온도가 올라가면 공기 중에 있는 수증기 입자 등이 차가운 외부 공기와 만나면서 습기를 만든다는 것. 특히 비가 내리는 시즌에 이 같은 현상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고 한다.
자동차 헤드램프 내부는 점등 시 뜨거워진 온도로 인해 상승 하는 압력을 조절하기 위한 벤트캡과 튜브 외에는 다른 부분은 밀폐되어 있다. 따라서 외부 온도차로 인해 발생한 습기의 경우는 일반적으로 주행 후 약 30분 이내에 사라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틈이 발생하거나 특히 밴트 튜브의 상태가 불량한 경우, 작은 틈 안으로 물이 새어 들어가 습기를 만들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습기를 발견하고 주행 후에도 또렷하게 사라지지 않는 경우에는 헤드램프 밀폐 부분의 고장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특히 중고차를 구매할 때에는 헤드램프 투명 커버와 부품들을 담은 하우징의 접착 상태를 유의 깊게 살펴보는 것이 좋다. 흔히 LED 튜닝이라고 해서 헤드램프 투명 커버를 열고 그 안에 LED 라이팅 등으로 멋을 낸 자동차들도 있다. 제조사에서 처음부터 그렇게 나오는 제품은 문제없겠지만, 구매 후 애프터마켓 제품으로 개조를 한 경우에는 후에 헤드램프 투명 커버와 하우징을 붙이는 틈 사이가 벌어지거나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과거 자동차들은 주로 유리를 헤드램프 투명 커버 재질로 사용해왔다. 따라서 습기가 찰 경우에도 조금만 내부가 뜨거워지면 열전도가 잘되어서 습기가 제거되곤 했다. 그러나 최근 자동차들은 대부분 폴리카보네이트 재질을 투명 커버로 사용한다. 따라서 습기가 끼게 되면 아무래도 사라지는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헤드램프에 습기가 차면 아무래도 빛의 세기나 방향 등에 지장을 받게 된다. 이는 야간 운전 시 안전과 직결되는 중요한 부분. 제아무리 멋지고 성능 좋은 자동차를 타고 있어도 앞이 안 보이면 다 소용이 없다. 앞서 언급했던 내부 불량으로 인해 날씨가 조금만 차가워져도 쉽게 습기가 끼는 경우라면 반드시 점검을 받아보자. 타이어와 함께 헤드램프 역시 내 생명을 지켜주는 소중한 부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