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발리에서는 매일 여유로웠다. 한 달 내내 삼시 세끼를 사 먹고, 방 청소를 받으면서 복에 겨운 ‘워케이션’을 즐겼다. 원고 작업하는 시간 외에는 그저 요가를 배우고, 마사지를 받고, 현지 음식을 맛보러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오늘도 참 건강하게 살았다”는 기분으로 한 달을 살았다.
우리는 발리 동남쪽의 사누르에 숙소를 잡았다. 사누르는 1960년대 발리에서 맨 처음 관광지로 개발된 땅이다. 관광객이 몰리는 꾸타나 스미냑에 비하면 한물간 휴양지 느낌이 강했지만, 행정·경제 중심지인 덴파사르와 가까운 데다 집값이 저렴했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한국에서 발리 한 달 살기를 꿈꾸며, 매일 요가로 아침을 맞는 내 모습을 상상했었다. 다행히 숙소 근처에 요가 수업을 여는 체육관이 있어 들렀는데, 첫인상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헬스장에서 구색을 갖추려고 겨우겨우 만든 수업 같았다고 할까. 요가 선생님은 한눈에 봐도 족히 환갑은 돼 보였고, 한국의 요가원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배불뚝이였다. ‘종민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몸매로 무슨 요가를 가르친단 말인가’ 싶어 월 4만원 수강료가 아까울 정도였다.
그렇게 수업이 시작됐다. 요가 선생님은 새로 등록한 우리를 집중적으로 손봤는데, 시작하자마자 평생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힘을 느꼈다. 그저 양쪽 날개뼈를 살짝 들어 올렸을 뿐인데, 다리미에 옷 주름이 펴지듯 척추가 곧게 세워졌다. 아니, 이 마법 같은 손길은 뭐지, 불룩 나온 저 배가 삼손의 머리카락이었단 말인가. 그 뒤로 내 한 몸을 의심 없이 그분께 맡겼다.
오전 요가 수업 후에는 ‘와룽 크리스나’란 이름의 로컬 식당을 즐겨 찾았다. 우리 돈으로 2000원이면 인도네시아식 백반 ‘나시 짬뿌르’나 볶음면 ‘미고렝’을 사 먹을 수 있었다. 참고로 발리에서 식당을 찾을 때 주의사항이 하나 있다. 에어컨이 있는 식당이 두 배 이상 비싼 값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더위에 약한 여행자는 대개 에어컨이 있는 식당부터 찾게 되지만, 더위에 익숙한 현지인은 에어컨이 없는 식당을 선호한다. 땀이 많은 종민은 매번 “에어컨!”을 외쳤지만, 나는 꿋꿋하게 현지 식당으로 그를 끌고 갔다. 저렴해서만은 아니다. 개성 있는 지역 음식을 맛보려면 당연히 현지인이 모이는 식당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것이야말로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한 달 살기’의 본령이 아니던가.
발리에 다녀온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이 어느 지역에 머물렀는지 밝힌다. “우붓에만 한 달 있었어” “짱구 참 좋더라”는 식이다. 마치 제주도 다녀온 사람이 서귀포·성산·애월 등을 구분해 말하듯이 말이다. 대충 ‘발리’라고 하나로 뭉뚱그리기엔 지역마다 개성이 확연히 다르다.
발리는 면적(약 5780㎢)만 놓고 봐도 제주도보다 3배 크다. ‘같은 섬 맞나’ 싶을 정도로 지역에 따라 식생과 날씨의 차이가 크다. 발리 한 달 살기에 앞서, 지역 선정에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다.
우선 서핑 입문자라면 꾸따나 스미냑에 숙소를 구하는 게 좋다. 일 년 내내 밀려오는 파도가 수많은 서퍼를 유혹하는 곳이다. 강습비도 저렴하다. 선베드에 누워 유유자적 머물기 좋은 비치 클럽도 많다. 친구 만들기를 좋아하는 ‘E성향(외향성)’에 밤새도록 놀 체력까지 된다면 이만한 장소가 없다.
반면 ‘I 성향(내향성)’들엔 우붓이 어울린다. 발리가 시끌벅적한 동남아 휴양지와 차별되는 점이 바로 이 조용한 시골 마을 때문이다. 해변을 등지고 섬 내부로 1시간가량 들어가면 하얀 파도 대신 싱그러움이 출렁대는 들판과 정글이 나타난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자연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도시의 소음에 지친 이들이 힐링을 위해 찾아오는 우붓에선 명상·요가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처럼 워케이션이 목적이라면 사누르가 제격이다. 한적한 분위기의 동네라 일에 집중하기 좋고, 식당과 마사지숍이 널려 있어 언제든 배를 채우고, 피로를 풀 수 있다. 당시 우리는 새 책을 쓰고 있던 참이었다. 아침 요가 후 카페에서 글을 쓰고, 해 질 녘 해변에서 여유를 즐기다 마사지로 하루의 피로를 푸는 식으로 한 달을 보냈다. 한국 돈으로 단돈 6000원이면 전신 오일마사지를 받을 수 있었다.
발리를 찾는 한국인 여행자는 대개 섬 남쪽 끄트머리의 꾸따·누사두아 그리고 우붓 정도만 보고 돌아온다. 그 큰 섬의 발끝만 누리고 온다는 게 아쉽지 않은가. 요즘 우리는 발리 지도를 펼쳐 놓고 더 깊숙한 내륙으로 들어가 보는 꿈을 꾸고 있다.
☞발리 한 달 살기 여행정보· 비행시간 7시간(경유편이 직항편보다 약 30% 저렴함) · 날씨 건기 추천(4~10월) · 언어 인도네시아어(관광지 대부분에서 영어 통용) · 물가 에어컨 유무에 따라 두 배 이상 차이 남 · 숙소 500달러 이상(수영장이 딸린 집 전체, 사누르 지역)
글·사진=김은덕·백종민 여행작가 think-thing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