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먼저 아내를 놀라게 한 건 초호화 시설이었다. 아프리카야말로 극소수 유럽 귀족들이 즐기는 여행지이다 보니 식사도, 호텔도 으리으리하다. “이곳에 오니 꼭 유럽 귀족이 된 것 같은 기분이네요”라며 아내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내를 완전히 매료시킨 것은 세렝게티였다. 스와힐리어로 ‘거대한 초원’을 뜻하는 세렝게티는 케냐 남부와 탄자니아 북부에 걸친 사바나 지역이다. ‘동물의 왕국’ 촬영지이자 세상에서 가장 드넓은 초원으로서의 상징성과 위용을 자랑하는 그곳을, 사륜구동을 타고 경쾌하게 질주한다. 지축을 흔들며 이동하는 누우 떼와 얼룩말 무리, 그중 낙오자를 잡아먹으려 호시탐탐 노리는 사자들, 라이온킹 심바의 친구인 멧돼지들, 집채만 한 몸을 느릿느릿 움직이는 코끼리 무리와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기린들… 과연 세렝게티는 텔레비전에서 보던 그대로 동물의 왕국이었다.
세렝게티는 무엇보다 매년 누우 떼의 이동으로 유명하다. 초원에 건기가 찾아오면 세렝게티에 살던 누우와 얼룩말, 영양 등 수백만 마리의 초식동물들이 물과 풀을 찾아 마사이마라 지역으로 대이동을 시작한다. 물론 이들을 먹이로 삼는 육식동물들도 이 행렬에 동참한다. 그만큼 생존을 위한 치열한 투쟁이 펼쳐지는 무대이기도 하다. 매일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장면이 연출됐다. 제목을 붙이자면 ‘버팔로 구출 작전’. 아프리카 버팔로는 아프리카 물소라고도 불리는데 초식동물이지만 몸집이 크고 성격도 터프한 편이라 적이 나타나면 언제든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큰 무리를 이뤄 생활하기 때문에 아무리 사자라도 혼자서는 버팔로를 사냥할 수 없다.
사자들 역시 혈연관계인 암컷들과 그들의 새끼, 그리고 수컷들로 한 무리를 이뤄 생활한다. 대개 6~7마리가 무리 지어 움직이는데, 그날 사자 무리가 육중한 덩치의 버팔로를 몰아붙이며 사냥에 성공했다. 만찬을 시작하려는 찰나, 버팔로를 구하고자 버팔로 특공대가 나타났다. 사자들은 순식간에 진을 치고 경계태세에 나섰다. 위용을 뽐내는 사자들의 비호 아래 연한 내장과 넓적다리로 새끼 사자들이 먼저 배를 채운다. 특공대는 울고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진 버팔로를 일어나라 독려한다. 뜨거운 눈물이 차오른다. 그럼에도 어쩌겠는가, 이곳에서 사냥은 하루라도 목숨을 더 잇기 위해 매일 치러야 하는 경건한 의식인 것을.
반면에 새끼들은 어찌나 귀여운지, 행여 엄마와 떨어질세라 허리춤에 찰싹 붙어 걷는 아기 코끼리는 미소를 자아내고 오히려 신기하다는 듯 인간들을 구경하는 아기 사자는 한 마리 집어오고 싶을 정도로 앙증맞다.
평화로워 보이지만 위험이 도사리는 처절한 약육강식의 세계. 그 속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공존하는 세렝게티는 드넓은 초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감동의 대서사시이자, 영락없이 우리네 인생과도 닮아있다.
박평식 / US아주투어 대표·동아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