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세계화의 시작, 아르메니아 예레반의 10대 관광 포인트

최초의 기독교 국가. 아르메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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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세계화에 가장 큰 기여를 한 나라는 어디일까? 일반적으로 로마를 그 처음으로 생각한다. 로마는 서기 333년, 기독교를 국교화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가지 간과된 사실이 있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화 하지 이전에 이미 국교화 한 나라가 있었기 때문에, 로마 황제가 마음 놓고 기독교를 국교화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기독교를 최초로 국교화한 나라는 어디일까? 그곳은 바로 지금은 유럽의 변방으로 가난한 나라에 속하는 ‘아르메니아’이다. (집시의 원조인 ‘알바니아’ 와는 다른 나라다.)

아르메니아는 ‘구 소련’으로 부터 독립한 나라로 친서방을 추구한다. 미국 시민에게는 무비자 혜택을 제공하는 몇 안되는 구 소련 연방 나라 가운데 한 곳이다. 미국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스토어들이 이곳에도 있다. 미국에서 성공한 아르메니아 이민자들 덕분이다. 미국에서 직항이 없기 때문에 파리나 브뤼셀, 혹은 이스탄불을 경유한다. 지하철 1회 탑승은 US20센트에 이를 정도로 상상 불허로 저렴하다. 전체적인 물가는 미국의 3분의 1 이하로 싸다. 주로 유럽인들의 최고 휴가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아르메니아의 수도는 예레반(Երևան / Yerevan)이다. 이 도시는 지금은 몰락한 이 나라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먼저 생긴 도시로 가운데 중 한 곳이다. 그 역사가 무려 2,800년에 이른다. 예레반은 흐라즈단 강을 끼고 발달한 도시이며, 아라쿠스 강의 지류가 시내를 관통해서 흐른다. 대도시로는 보기 드물게 브랜디 제조와 담배 제조업이 발달해 있다. 예레반에는 약 106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아르메니아 공화국 300만 인구의 35%에 해당한다. 국민들 역시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 사는 사람이 국내 거주민만큼 많다.

한 때 아르메니아는 이 지역의 맹주였다. 그러나 외국과의 전쟁에서 연 이른 패배로 과거 영화롭던 시절에 비하면 말도 안되는 수준으로 쫄아들었다. 그러나 아르메니아는 서기 301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나라라는 것이 큰 자랑이다. 네 구역으로 잘린 기독교 성지 예루살렘의 주인이기도 하다. 이 곳에 바로 마가의 다락방이 있다. 예루살렘의 주인이라는 것은 로마도 대영제국도 나폴레옹의 프랑스도 21세기 나홀로 강국인 미국도 이루지 못한 대단한 업적이다. 그만큼 이 나라 사람들은 종교적 신념이 강하다. 터키에 의해 인종청소를 당한 ‘아르메니안 대학살’은 이 나라 사람들이 뼈에 새기는 역사의 고통이다. 이후, 많은 아르메니아인들이 미국과 이탈리아 등지로 죽음의 이민길을 떠났다.

예레반 심내를 장식하고 있는 한국인 작가 지용호의
폐타이어를 이용한 작품, ‘사자2’

한 때 이 지역의 맹주였고, 다양한 침략과 정복의 과정을 겪은 나라다. 그런 만큼 이 나라에는 볼 것이 많다. 이나라의 수도인 예레반에서 즐겨야 할 절대 관광 포인트 열 곳을 알아본다.

예레반은 기록상 2,800년이 된 도시다.

1. 마테나다란에서 꼬부랑 글짜 읽어보기: 메테나리란은 예레반에 있는 고문서관이다. 정식 명칭은 아르메니아 문자의 창시자인 메스로프 마슈토츠의 이름을 딴 ‘메스로프 마슈토츠 고문서 협회’이다. 그는 한국의 세종대왕에 해당되는 학자다. 현재 약 30만개의 아르메니아 글로 쓰여진 원고를 관리하고 있다. 그 가운데 많은 것이 초기 기독교 유물로 기독교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들이다.

2. 공화국 광장에서 올려다보기: 20세기에 만들어진 전세계의 도시 중심가 가운데 가장 멋진 곳이다. 음식점과 상점 그리고 1950년대 건설된 구 소련의 정부 건물들과 박물관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공화국 광장의 지하에는 냉전시대에 만들어진 피난소가 있다. ‘노아의 방주’라는 이름의 책방이 외무성 건물의 1층에 있다. 주변에 구 소련의 비밀경찰 시설인 KGB 사무소가 있다. 잔인한 고문의 흔적이 있다. 밤 9시에 광장 분수대에서 시작하는 멋진 분수쑈는 1시간 이상 지속되는 한편의 무료 공연이다.

3. 캐시케이드 (폭포) 컴프랙스에서 안으로 걸어 올라가고, 밖으로 걸어 내려오기: 수백개의 계단과 인공적으로 조성된 폭포 모양의 물길들이다. 폭포를 끼고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실내공간에는 예술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내려올 때는 폭포를 타고 계단을 걷는 것도 이 도시에서만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이다.  하나의 돌산을 깎아서 만든 것이다. 입구에 있는 살찐 고양이 동상에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

4. 아르메니아 학살 추모관에서 묵념하기: 1967년 만들어진 치체르나카베르드 언덕에 있는 학살 추모관이다.  아르메니아는 특별히 많은 학살을 당한 나라이다. 매년 4월 24일에는 아르메니아 학살 추모의 날을 맞아 많은 인파가 몰린다. 1995년에는 이 곳에 아르메니아 학살 박물관 연구소가 개관하였다. 후손들이 지나간 비극의 역사를 잊지 않도록 만들어 지기는 했지만, 조금 숙연해지는 곳이다.

아라랏산이 보이는 터키 국경

5. 역사적인 성당에서 아이콘 감상하기: Zvartnots Cathedral와 Saint Hripsime Church, 에치미아진대성당, 카푸이트 모스크 등 교회 구경하기: 기독교를 최초로 국교화 하고 그 후 터키를 비롯한 이슬람에게 점령 당하면서 굴곡의 역사를 지닌 나라 답게 소박하지만, 목숨을 건 끈질긴 교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카데드랄은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를 만든 성 그레고리를 기념해 만든 곳이다. 하루 종일 예배가 있으며, 24시간 기도처의 문을 열어둔다.

6. 빅토리 공원에서 사진 찍기: 구 공산권의 모든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2차대전 승전 공원인 이 곳은 공산주의 시절의 대형 조각상들과 구조물들이 이 나라의 처지에 비해 과도하게 크게 만들어져 있다. 사진 찍기에 적당한 곳으로 신혼부부들의 인기 웨딩촬영지이다. 그 위에 아르메니아 어머니 (Mother Armenia)상이 있다. 이 거대한 여인의 동상은 양손으로 십자가 모양의 칼을 받치고 있다. ‘대애국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원래 있었던 스탈린 동상을 헐고 더 큰 아르메니아 어머니상을 세운 것으로 공산주의의 몰락을 상징한다.

7. 이태리 스트리트와 베이루트 스트리트 산책하기: 이러블릭 광장에서 출발하여 남쪽으로 어린이 공원과 동상들을 지나 이태리 스트리트로 내려갔다가, 예레반 역사 박물관을 끼고 돌아 다시 올라오는 길이다. 오고 가는 길이 공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름 동안에는 공원 안에 있는 야외 카페에서 생음악과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다. 음료 포함 일인당 10달러를 생각하면 된다.

8. 예레부니 요새 걸어서 돌기: 도시의 남쪽에 있는 언덕이다. 마슈르카스 11번지부터 85번지 사이의 길로 원래 예레반이 있던 곳이다. 지금도 고대 유적을 발굴하는 발굴지가 있다. 기원전 10세기 부터 존재했던 기둥의 길과 고대 신전 자리들이 중요한 유적들이다.

9. 특별한 음식 먹기:아르메니아의 자랑인 싱싱하고 맛있는 생과일과 마른 과일들을 사려면 뚜껑이 있는 대형시장인 중앙시장에 가면 된다. 이웃 나라인 조지아의 풍부한 음식에 비하면 그 종류와 질이 떨어진다. 그러나 아르메니아 전통 초대형 빵인 라바쉬가 유명하다. 동유럽 국가로는 특이하게 꼬냑 브랜디와 아르메니안 커피가 유명하다.

10. 교외 지역에 나가 아라랏산 바라보기: 이 나라 사람들은 아라랏산을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도착한 산으로 생각한다. 높이가 5천미터가 넘는 만년설로 뒤덮힌 이 산은 이 근처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지금은 터키의 영토이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소원 가운데 하나는 바로 ‘아라랏 산을 되찾는 것’이라고 한다. 눈 덮힌 아라랏 산 봉우리를 바라보는 것은 그곳이 노아의 방주의 물리적 장소라고 믿기 보다는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깊은 신앙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예레반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게하드 수도원과 이 나라 사람들의 정신적 수도인 에즈미아친(Ehmiatsin) 등도 가 볼만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