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종주국 일본, 민관 손잡고 거센 추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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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다의 전고체 배터리 탑재 전기차 시범 모델. [사진 도요타]
일본이 올해 말부터 10대들에게 배터리 제조 교육을 시작한다. 지난 3월 일본 경제산업성이 “배터리 관련 인력 3만 명을 육성하겠다”고 밝힌 계획을 본격화하는 것이다. 먼저 코센 직업학교(오사카부립기술대학)에서 오는 12월부터 5년간 배터리 전문교육 과정을 시작해 매년 40명의 인력을 배출할 계획이다. 이와 비슷한 교육 과정을 일본 내 다른 지역과 대학 등으로 확대한다. 파나소닉은 여기서 배출된 학생을 대거 채용할 계획이다. 파나소닉은 이미 2026년까지 전 세계에서 5000명을 채용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5일 일본 정부와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일본 민·관이 대대적으로 전기차 배터리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중국과 한국에 빼앗긴 ‘배터리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서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3300억 엔(약 3조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도요타와 혼다 등 자동차 업체에 대한 직접 지원에 나섰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배터리 전투’에 나서면서 중국은 물론 한국 업체와도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사실 일본은 ‘배터리 종주국’이다. 리튬이온전지를 개발한 공로로 2019년 노벨화학상(요시노 아키라 등) 수상자도 배출했다. 하지만 자동차 전동화 사업 진출이 늦어지면서 일본 배터리 업계는 경쟁국보다 상대적으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1분기 기준으로 글로벌 배터리 시장 톱10 안에 든 일본 업체는 파나소닉(4위·점유율 9.9%)이 유일하다.

그럼에도 일본의 배터리 관련 원천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당장 배터리의 4대 핵심 소재(양극재·음극재·분리막·전해질) 분리막 분야에선 세계 시장 점유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도요타는 2000년 이후 출원된 전고체 배터리 관련 특허 건수에서 1위(1311건)다. 2·3위는 파나소닉홀딩스(445건)와 이데미쓰코산(272건) 같은 일본 업체다.

기업의 투자도 적극적이다. 도요타는 최근 2027년까지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파나소닉은 배터리 공장 4곳을 추가로 짓겠다고 각각 밝힌 바 있다. 카이타 케이지 도요타 탄소중립연구개발센터장은 “현재 쓰이는 액체 배터리는 너무 크고 무거우며 비싸다”며 “전고체 배터리를 이용해 이런 문제를 해결할 기술적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4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밝혔다. 도요타는 전고체 배터리 재료의 생산을 단순화해 전기차 충전시간을 현재의 절반 수준인 10분 이내로 단축하고, 주행거리는 그 두 배인 1200㎞까지 늘리는 방안을 찾았다는 설명이다. 전고체 배터리는 전해질이 고체로 돼 있어 액체를 쓰는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가 높아 한 번 충전하면 더 오래 쓸 수 있다.

익명을 원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일본 업체의 기술력과 정부 차원의 인재 육성이 이뤄진다면 향후 배터리 시장 판도가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대대적인 지원에 나섰다. 중국 정부는 2018년부터 4년간 전기차 분야에 누적 660억 달러(약 86조3500억원)를 투입했다. 그 이전인 2009~2017년 누적 투자 규모는 600억 달러(약 78조5000억원)에 이른다.

한국은 이에 비하면 핵심 인재 구인난을 겪고 있다. 한국배터리산업협회가 정부 지원을 받아 올해 하반기부터 ‘배터리 아카데미’를 신설해 인력 양성에 나섰고, 업체가 대학과 손잡고 ‘베터리학과’를 신설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지만 역부족이다. 배터리산업협회에 따르면 배터리 산업의 인력 부족률은 14%(21년 말 기준·약 4000명)에 이른다.

이명규 배터리산업협회 회원지원실장은 “차세대 반도체 등 4대 신산업의 인력 부족률은 4.4%로 배터리는 그 세 배 이상 일손이 부족한 셈”이라며 “대학에서부터 배터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인력을 빠르게 길러 내야 산업 성장 속도에 맞춰 양질의 인력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기.임주리(lee.sooki@joongang.co.kr)